저자: 김영하
2024년 1월 어느 날 완독
풍전등화의 대한제국에 살고 있는 1033명의 조선인은, 부푼 꿈을 안고 멕시코로 향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는, 멕시코로 가는 선박 안에서까지는 유효했다.
힘든 항해를 마치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에네켄 농장이었다.
어쩌면 평생 탈출하지 못할 채무와 채찍 아래에서 견뎌야 할 곳을,
유토피아로 오인하고 자진하여 온 것이었다.
농장에서는 양반, 농민, 군인, 무당 등 지위와 직업을 막론하고,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동일한 채무 노동자였다.
소설은 다양한 인물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그래, 어차피 조선에서도 농사지으면 지주들이 모두 빼앗아가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최소한 같은 대우라도 해주잖아?'
'조선이었으면 눈도 못 마주쳤을 사람들이, 어디서...'
500년을 유지해온 조선에 계속 살았다면 선조와 동일한 삶을 살며, 가치관을 공유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비슷했던 사람들은 변화의 순간에 각자 다른 삶으로 나아간다.
누군가는 가혹한 현실을 부정하거나, 견디며, 혹은 순응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저항의 상징이되거나,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한 민족을 탄압하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잠시나마 다른 삶을 살아보며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고, 사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어서이다.
검은 꽃의 적나라하며 수려한 묘사는 소설을 읽는 이유를 말해 줄 수 있을만한 책이다.
오랜만에 밤을 지새우며 책을 읽었다.
좋아하는 책을 찾았을 때의 기쁨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이 책은 사실에 기반하여 각색한 소설로, '멕시코 이주민 구출운동'을 비롯한 실화가 많이 들어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 살아간 그들을,
멕시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를 묵묵히 견디며 살아간 그들을 떠올려본다.
몇 주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 백년 여행기'를 관람하였다.
20세기 초 멕시코로 건너간 한인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진행되었던 전시가 무의식에 각인되었던 것일까?
우연히 검은 꽃을 읽게 되었다.
빠른 걸음으로 스쳐만 지나갔던 그 날의 전시를 잠시 회상해 본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로 접하게 되었다.
여행지는 단지 초석일 뿐, 작가의 배경 지식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필력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작가의 모든 에세이를 읽었다.
이제는 소설 작가 김영하로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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