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2024년 1월 어느 날 완독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16대 황제로,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끈 오현제 중 한 명이다. 마르쿠스의 즉위 기간 동안, 자연재해, 전쟁 등 고난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황제는 전쟁터에서 나날을 보냈고, 이 책은 전쟁을 치르며 적었던 생각들을 후대 사람들이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을 출판할 목적이 아니라, 일기로 쓰였기에 문단별로 끊어진 명언집처럼 구성되어 있다.
마르쿠스는 스토아학파, 특히 에픽테토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끊임없는 죽음의 목격과, 짓눌리는 책임감 속에 살았을 마르쿠스에게는 스토아 철학이 더욱 와닿았을지도 모른다.
스토아학파를 생각하면 '금욕주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스토아학파는 행복을 추구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 다르게, '금욕'을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 '이성'을 다스리고 내면의 안정을 찾음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다.
스토아적 삶은 현대의 미디어가 선전하는 풍요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가치를 쫓으며 살아갈지 정답은 없다.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나에게는 마르쿠스의 마음가짐을 참고하는 것이 행복과 삶의 의미에 다가가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마르쿠스는 명상록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언급한다. 그저 죽음을 기다리며 삶을 허무하게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살아가라는 의미이다(스피노자가 더 후대 사람이기는 하지만...).
만약 마르쿠스가 말했다면 다음 말도 덧붙였지 않을까?
'죽음은 찰나의 순간에 다가오기에, 타인의 사과나무를 넘보지 말고 그저 묵묵히 공동체를 위해 사과나무를 심으라'
마르쿠스와 내가 생각하는 사후세계와 신은 많이 다르다. 그렇지만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비슷하기에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와닿았다.
사실 나는 스토아적 삶에서 말하는 욕구와 이성을 다스리지도 못하고, 정녕 그럴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참고하며, 발전하는 것이 나에게는 행복이 될 것 같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끈의 중심에는 죽음이 있다.
명상록의 느낌을 한 줄로 말하라면, Memento mori(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혹은 낙관적 허무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적 풍토가 제시하는 좋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폭풍 치는 파도에 홀로 휩쓸리는 기분이 드는 사람에게, 현재가 정답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추천한다. 파도가 거세든, 잔잔하든 상관없이 언제나 단단한 내면의 배에 올라, 고요한 파도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부분을 발췌하였지만, 의미가 중첩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선별했다.
p.45
"인생은 한 번 뿐이고, 너의 인생도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너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치 너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너의 행복을 찾고 있구나."
p.117
"인생에서 육신은 아직 굴복하지 않는데 정신이 먼저 굴복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p.149
"매일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는 듯이 살아가면서도, 거기에 초조해하는 것이나 자포자기해서 무기력한 것이나 가식이 없다면, 그것이 인격의 완성이다."
p.162
"너의 인생 전체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고 생각해 봄으로써 네 마음이 짓눌려서 압도되게 하지 말라."
p.179
"다른 사람의 잘못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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