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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리랑카

스리랑카 여행기(3)

by st.George 2024. 1. 21.

오늘은 캔디로 이동하는 날이기에,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리고 캔디행 버스를 타러 이동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정류장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를 여행할 때면 자연스럽게 외향적으로 바뀐다. 살아남기 위해선 말을 해야 한다.

"Excuse me, do you know where is the bus stop?"

버스 정류장

 

간신히 버스에 올라탔는데, 이제는 버스가 나를 외향적으로 만든다. 이런 버스 처음이다. 영상 시청 부탁한다^^

 

 

 

3시간을 달려 캔디에 도착했다. 캔디는 스리랑카 제 2의 도시이지만 여행객에게는 그저 거쳐가는 도시로 여겨진다. 나는 현지 체험을 좋아하기에 하루만 묵기로 결정했다.

 

캔디 시내

 

 

하지만 택시 기사님들은 나를 현지인으로 봐주지 않았는지, 어김없이 여행자 가격을 부른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걸어갔다. 걷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예약한 숙소가 산 중간에 있다...

이제는 택시도 보이지 않는다...

 

15kg 배낭을 메고 천 개가 넘는 계단을 오른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곤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숙소로 가는 길과, 숙소 안에서의 휴식이 캔디 여행의 전부였다.

어쩌면 단단한 허벅지도 얻었다. (덕분에 마라톤 완주가 가능했던 거 아닐까)

스리랑카 가정식
숙소 조식

 

다음 날, 하퓨탈레행 기차를 타기 위해 짐을 꾸렸다. 숙소 주인분이 택시를 불러주었더니 현지인 요금을 지불했다. '그래 이거지...' 어제의 고생이 정당화된 기분이었다.

 

기차를 기다리며 처량히 빵을 먹고 있었다. 내 빵이 맛있어 보였는지, 중학생처럼 보이는 한 소년이 매우 밝은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스리랑카 사람들 대부분은 순수하고 밝은,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를 지니고 있다).

 

"어디 사람이야, 무슨 게임해" 등 질문을 하다 갑자기 번호를 달라고 했다. 마음의 벽은 이미 허물어져있었기에 현지 번호를 주고, 같이 기차에 올라탔다.

소년과 나

 

소년은 소년의 엄마와 동생을 제쳐두고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관심을 좋아하기에 처음엔 고마웠지만, 나중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여 도망갔다.

하지만 소년은 계속 나를 응시하며, 웃고 있었다.

외국인이 신기한가 보다.

 

하퓨탈레로 향하는 기차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하다. 햇빛이 녹차잎에 반사되어 빛나고, 하늘은 이에 지지 않으려 청량한 빛을 내려준다. 해밍웨이가 하퓨탈레에 살았다면 노인과 바다 대신, 밝은 동화를 남겼을 것이다.

순수한 눈동자를 지닌 아이들
흔한 하퓨탈레 풍경

 

하퓨탈레에서 한국인 여행객 2명을 만났다. 같이 저녁을 먹고, 서로의 여행을 공유했다.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모국어로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더욱 반갑다.

형들과 내일 동행을 하기로 하고, 각자 숙소로 향했다.

 

다음날 새벽 5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머리가 번쩍했다.

'아, 늦었다!' 일출을 보러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약속 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난 것이다.

 

Lipton SEAT는 익숙한 제품, lipton의 설립자 동상과 녹차밭이 있는 자리로, 일출 명소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사진의 민족이다. 떠오르는 해보다는, 카메라에 비치는 해를 더 많이 본 듯하다...

하퓨탈레의 일출

 

일출을 본 후, TEA factory로 향했다. 산업공학도로써 공장을 견학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두근거린다. (사실 봐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스리랑카 홍차의 종류를 배우곤, 제조 공정을 둘러보았다. 위생적이지는 않은 거 같다.

(누군가의 홍차 티백에는 나의 손길이 묻어있을지도 모른다. 당첨된 자에게는 미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홍차 시음회

 

공장 견학을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었다.

 

혼자일때는 생존을 위한 배채우기 시간이지만, 동행과 함께라면 댜앙한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두근거리는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디왈루마 폭포로 향했다. 디왈루마 폭포에서 길을 안내해준다며, 젊은 호객꾼이 다가왔다.

처음엔 거절했다가 길을 잃었다.

스리랑카에서 미아가 되기 싫어, 돈을 지불했다.

 

가이드가 다이빙 장소가 있다며, 다이빙을 제안했다.

순간 가오가 뇌를 지배하여 자신 있게 "Okay"라고 말했다.

 

도착한 장소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높이, 11m였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잘못 착지하면 그대로 바위에 부딪혀 최소 전신마비였다.

 

'못하겠다고 말할까'는 생각이 들었지만, 예비역 병장은 그럴 수 없었다.

40분 동안 절벽에서 고민하다 '이것조차 못하면 앞으로 부딪힐 난관을 헤쳐갈 수 없다'고 생각하며 뛰어내렸다.

 

전신마비를 예상하고 뛰어내렸는데, 다행히 물에 착지했다. 그때의 짜릿함은, 인생 최대의 도파민이었다. 

 

목숨 1개를 획득했다 생각하고, 아껴써야겠다. 

목숨 10개인 가이드 친구

(점프하고 있는 곳 바로  다음은 폭포수로 연결된다. 즉 착지를 잘못하면 100m 아래로 수직낙하할 수 있는 위치이다..)

 

 

아래 영상은 가이드가 보여준 다이빙 예시이다. (나는 조금 아래에서 뛰었지만..)

가이드가 계속 영상을 찍어달라고 하며, 영상 각도까지 제안해 준다. 그리곤 영상을 보내달라며 번호를 준다. 이거 이거... 가이드비를 내가 받아야 했는데... (그래도 좀 멋지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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