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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리랑카

스리랑카 여행기(2)

by st.George 2024. 1. 20.

시기리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스리랑카 기차는 매우 느리게 이동하지만 기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여행이다. 약간(경험상 약간이 아니다..)의 위험만 감수한다면 기차의 출입문에 걸터앉아 풍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자리이기에 수줍게 뒤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기다림의 미학을 경험하다 빈자리를 빠르게 차지했다.

풍경을 보려 했는데, 볼 수가 없었다. 기차의 속도에 맞춰 나무와 가시덩굴들이 빠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눈은 모래먼지와 사투하고 있었기에, 몸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몇 년 전 배운 쉐도우 복싱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예상보다 적은 상처와 함께 작전상 후퇴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였다.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

 

어느덧 밤이 되어 기차역에 도착했다. 툭툭 기사들은 영업을 시작했고, 너무 비싼 가격을 부르자 기사들을 제치고 걸어가려고 하였다.

 

사실 걸어가는 모습을 보이면 흥정할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밤에 코끼리 나와. 그리고 코끼리는 사람도 쳐"는 섬뜩한 조언... 할 수 없다, 목숨이 먼저다. 벌써 두 번째 바가지요금을 지불했다.

분노의 질주 in 스리랑카

 

꽤나 멀고 험한 길을 달리니, 시기리야 도착했다.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걸어가려고 하니 길을 지나가던 행인이 나를 말렸다. "새벽에 걸어가면 코끼리에 밟힐 수 있어"는 말과 함께 실제로 밟힌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할 수 없다, 목숨이 먼저다.

행인의 도움으로 택시를 잡고 시기리야 락을 바라볼 수 있는 일출 뷰 포인트, 피두랑갈라에 도착했다. 

 

북한산 암벽 코스에 비견되는 암벽을 올라가니 어느덧 해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잘 꾸민 서양인 커플들 사이에 낀 나는, 스리랑카 국가대표 나시를 입고, 괴상한 두건을 쓰고 있었다. 약간은 움츠러드려고 할 때, 눈앞에 장엄한 모습이 펼쳐졌다.

 

'그래, 이게 스리랑카에 온 이유지'. 풍경을 즐기던 중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한국어였다. 

말레이시아에서 구매한 반다나. 나에겐 어울리지 않네..

 

한국인 커플이 보였고, 꿈꾸던 여행 커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국인이세요?" 말을 걸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꽤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였고, 만남을 기약했지만 아쉽게도 이후에는 볼 수 없었다.

 

 

(영상 후반부에 어쩌다 찍힌 나의 모습이 나온다..ㅎ 유튜브 첫 데뷔다)

https://youtu.be/WXo5LMCUP38?si=_I6MJPJERF8q-H9s

 

바위에서 내려와 숙소까지 걷던중, 자전거 렌트가 보이길래 자전거를 한 대 빌렸다. 그런데 브레이크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

괜찮다. 나는 따릉이 무사고 5년 경력직이다. 

 

'이제 뭐 하지'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청했다. 하지만 모기의 끝없는 구애에 잠에서 깨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구경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다.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와, 동네를 뛰어다니는 꼬마의 기분이랄까.

 

그러다 시기리야 락이 잘 보이는 카페에서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모기는 나를 너무도 사랑했다. 인간관계론보다는 모기 퇴치법을 먼저 공부해야겠다.

 

일몰이 찾아올 때쯤, 대망의 시기리야 락으로 향했다.

어느 관광지처럼 가이드를 사칭한 호객꾼이 찾아왔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자 나도 친절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따라오길래 강력히 거절하였는데, 호객꾼은 화를 내며 "You look like girl"라고 말하며 떠났다.

하지만 나보다 호객꾼이 더 그렇게 보였길래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시기리야 락

 

시기리야 락은 '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된 곳으로, 약간 과장하면 목숨을 담보로 올라가야 할 정도이다. 그렇기에 나이가 있으신 분은 중간에 멈춰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계셨다. 바람보다 거세게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다.

무서웠다. 이곳에 성을 만든 과거의 문명이, 사람들이. 어떻게 불가능한 유적을 현실화할 수 있었단 말인가..?

시기리야 락 정상에서
후덜덜한 계단

 

일출을 보고 빠르게 내려와 단골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편한 마음에 꿈나라로... ... ! 아니나 다를까, 모기는 나를 아직도 사랑했다.

50마리가 나를 두고 경쟁했고, 나는 잠도 못 자며 아낌없이 모두에게 피를 나눠주었다.

그리곤 잠을 청하지 못해, 의도치 않게 다음날에도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와...

시기리야 단골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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