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여기가 독일이라고..?!'
베를린은 마치 다른 나라처럼 보였다.
각양각색의 패션과 인종, 문화가 융합된 곳이었다.
심지어 건축도 마찬가지였다.
냉전 시대의 동, 서독 거주 단지, 현대와 그래피티가 혼재된, 그 어떤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건축이었다.
베를린 곳곳을 거닐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과 유대인 박물관이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는 2711개의 비석이 있다.
입구에 위치한 빛이 들어오는 낮은 비석에서 시작하여, 어느덧 짙은 그림자만 보이는 높은 비석이 나온다.
마치,
일말의 희망이라도 기대했지만 결국엔 답답함과 절망감만 느꼈을,
희생자들의 처절한 아픔처럼 다가온다.
아픔의 그림자는 끝없이 이어지다, 모두가 엄숙한 표정으로 걸어 나온다.
유대인 박물관에는 절규하는 표정의 모형이 있다.
모형을 밟고 지나가면 희생자들의 곡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감각이 아픔으로 기억하도록 전시한 두 곳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독일은 상처와 치부를, 수도 한가운데에서 여전히 기억하는 중이다.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날,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친구들이 생각났다.
2024.01.22 - [여행/에티오피아] - 에티오피아 여행기
혹시 하는 마음에 연락했는데, 친구들은 하던 일도 제쳐두고 나를 보러 왔다.
저녁을 대접하고는 베를린 시내 곳곳을 자정이 넘도록 구경시켜 줬다.
여행자의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곳도 보여준 고마운 친구들, 인류애를 느끼게 해 준 사람들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칼프
헤르만 헤세의 고향이라는 이유 하나로, 문득 버스에 올랐다.
가는 길에 환승을 위해 거쳐간 마을에서 멈춰 섰다. 그리곤 산 정상으로 향했다.
바닥에서는 뱀이 나오고, 머리에는 덩굴과 거미줄이 떨어졌다.
고생을 해서일까, 정상에서 마신 레드불은 날개를 펼쳐준다.
하지만 정상에서 없는 날개를 펼친다면 위험했기에, 얌전히 걸어 내려왔다.
누군가의 즐거웠던 파티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나는 하루를 시작했다는 기쁨과 함께 떠오르는 해를 응시했다.
다시 칼프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는, '아뿔싸...' 잘못 내렸다.
그렇게 산길을 뚫으며 3시간을 걸었다. (원치 않았지만, 너무 아름다운 산이었다)
블랙 포레스트를 걷다 보니, 칼프에 도착했다.
여행의 이유, 헤르만 헤세의 동상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상 이외는 특별한 것이 없었기에, 바로 돌아왔다.
단지 5분을 위해, 3번의 환승과 12시간을 투자했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위도, 여행지에서는 낭만이 된다.
데미안을 다시 읽는다면 새롭게 와닿을지 모르겠다.
뮌헨
첫 목적지는 다하우 강제 수용소였다.
정문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홀로 갔다면 스쳐갔을 것들이, 같이 간 해박한 친구 덕분에 보고 느낄 수 있었다.
4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뮌헨 시내로 향했다.
BMW 박물관에 가고 싶었는데 이미 닫혀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근처를 서성이다, 불쌍해 보였는지 친구가 인증샷을 찍어줬다.
당시에는 멋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너무 부끄럽다.
뮌헨은 독일 내에서도 개성이 강한 도시이다.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인 곳이다.
프랑크푸르트
아침 9시, 눈을 떴는데 뭔가 이상하다... 뭔가 놓친 기분이다.
휴대폰에는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프랑크푸르트로 갔는데, 나 홀로 지각한 것이다.
고민하다 뒤늦게, 터벅터벅 기차에 올랐다.
도착하니 이미 모든 일정은 끝나 있었다.
시내를 거닐며 구경을 하다, 친구의 삼촌이 합류하여 같이 펍으로 향했다.
외국인의 텐션은 이 세상 텐션이 아니었다.
음치, 박치, 몸치인 나에게는 크나큰 노력이 필요했다.
경제수도인 프랑크푸르트이지만
내 기억 속엔 지각, 술, 그리고 이색적인 공간으로 남아있다.
이름 모를 마을
버디가 집으로 초대했다. 집은 매우 작은 마을에 있었고,
집 앞에는 사람이 거주 중인 중세시대 성이 있었다.
버디가 성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기에, 감사하게도 방문할 수 있었다. (한국인 최초일듯하다)
영화 속의 큰 성은 아니지만, 실제 귀족(후작이었나..?)이 아직도 거주하고 있는 성이었다.
그곳에는 연회장, 지하 감옥, 몇 세기에 걸친 벽화들, 그리고 끝없는 방들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성을 구경하고는,
몇 세기에 걸쳐 수집한 동물 가죽들이 박제된 당구장에서 당구를 쳤다.
버디의 제안에, 성 한가운데의 물 웅덩이로 수영을 하러 갔다. (여기가 수영장..?)
녹조라떼로 뒤덮인 물 위에는, 소금쟁이들이 폴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곤 약간의 거품들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청년이다.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신나게 수영을 했다. (다음날 두드러기가 났다)
16세기부터 21세기까지가 혼재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성이었다.
그 어떤 여행자도 경험할 수 없는 곳이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 후렴구에는 다음 구절이 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내겐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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