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세상이 밝았다. 분명 어두워야만 했다.
빠르게 휴대폰을 바라보니 부재중 알람들은 이미 3시간 전에 역할을 다했다.
'아... 항공편 놓쳤다'
1시간만 잔다는 것을 제대로 자버렸고, 버스는 이미 정류장을 떠나 있었다.
다행히 타이밍이 잘 맞는다면 출국 1시간 전에 공항 도착이 가능했다.
실패하면 4일 동안 서울 여행한다는 마음으로 배낭을 멨다.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고, 대만에 내렸다.
공항을 나와 타이베이 도심에 도착하니,
와... 너무 더웠다.
평균 35도에 습도까지 높았다.
덕분에 하루 5끼를 먹었음에도,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었다.
나는 무작정 걸으며 골목길을,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 나라에 대해 사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근데 여기는 너무 덥다...
그래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음식점에서부터 나의 국적이 모호해졌다.
어느 아시아권을 여행해도, 누군가는 나를 현지인으로 본다.
대만에서는 더욱 그랬다. 아무도 나를 한국인으로 봐주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현지에 스며들 수 있어 좋지만, 말을 걸면 대꾸를 안 해주는 무례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난감하다.
최소 5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던가, 가방에 태극기를 붙이고 다녀야겠다.
첫 방문지는 용산사였다.
중화권 사원은 불교와 도교, 유교가 혼합된 형식으로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매우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아시아권을 여행하며 백여 개의 사원을 가봤지만, 나라마다 고유의 특색으로 다른 양식으로 존재하는 점이 매력적이다.
다음으로 방문한 중정기념당은 예상보다 매우 크고 장엄했다.
중정기념당은 대만의 초대 총통 장제스를 기념하여 지은 곳으로, 장제스의 본명인 장중정에서 유래했다.
중세 이후 종교의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국가의 영향력은 커져갔다.
봉건 국가에서 국민 국가로 넘어가며 민족 정체성이 중요해졌고, 국민을 한 곳으로 결집할 수단이 필요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중정기념당의 장엄함은 국가가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는 신전처럼 느껴졌다.
매 시각 진행되는 절도 있는 교대근무는 의례처럼 다가왔다.
바로 앞 공원에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동네 주민처럼 벤치에 앉았다.
처음으로 로컬 속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고, 이때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육면을 먹으러 간 가게는 보고 싶었던 대만의 이미지였다.
나시를 입고 부채질하는 아저씨가 따뜻하게 반길 것 같은 이미지.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를 마지막으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체크인을 하다가 매니저가 조용히 말을 건다.
"너는 친절하니 방을 무료로 업그레이드해 줄게. 대신 좋은 리뷰만 남겨줘"
?...!
지쳐서 얌전히 있었더니 좋게 봐주신 거 같다.
나보다 먼저 체크인한 사람은 그대로 도미토리를 사용하고, 나는 도미토리 가격에 더블룸을 제공받았다.
비수기 여행의 기쁨이란...!
대만의 저녁은 야시장으로 환하게 빛난다.
혼자 여행이 아쉬운 점은, 음식을 제대로 맛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쉬움에 두 군데의 야시장을 거닐었다.